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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트럼프,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라

한반도가 불길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그게 아니다. 어떻게 판결이 나든 새로운 생태계에서 정치는 생물처럼 꾸역꾸역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불길한 건 트럼프 시대를 맞아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스멀스멀 끼고 있다는 점이다. 희대의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로 온 국민의 정신이 그곳에 쏠려 있어 그런지 아차하면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지도 모를 엄중한 환경변화엔 무심해 보인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대북 선제타격론' 때문이다. 미국 상원이 지난달 31일 이례적으로 북핵 청문회를 연 것이 단초다. 이 자리에서 밥 코커 상원외교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에 하나다.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제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말해 선제타격론을 테이블에 올렸다. 중앙일보는 "1차 북핵 위기 때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이 북폭 계획을 준비한 이래 23년 만에 대북 초강경론이 부활했다"고 썼다.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란 북한이 핵·미사일 공격 징후가 있을 때 미리 타격해 상대의 공격능력을 제거하는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공격 징후'가 없더라도 위협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을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이라 부르는데 미국은 두 가지 모두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 선제타격론은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온 이슈로 그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판이 완전히 다르다. '한다면 한다'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인 데다 이 내각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강경 매파들이기 때문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들이다. 매티스 장관은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해 어떤 것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클 멀린 전 합창의장,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말을 했다. 이같은 워싱턴의 강경기류에 더해 미국은 북한의 레이더망을 뚫고 핵시설을 표적 타격할 수 있는 수직이착륙 스텔스기 F-35B 전투기 10대를 일본 기지에 전격 배치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 전투기 배치가 대북 선제타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선제타격론의 득세와 함께 만에 하나 이같은 구상이 실행으로 옮겨진다면 한반도는 핵무기가 오가는 전면전으로 치달아 폐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999년 한국 국방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영변 원자로를 타격할 경우 80km 이내 사람들은 20%만 생존하며, 방사능 오염피해는 한반도 전역을 포함하는 1400km까지 이를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지금은 북한의 핵시설이 증강돼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고 이동식 운반수단이 구비돼 정밀타격으로 인한 핵시설 무력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대규모 핵 보복공격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어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사태가 이렇게 엄중하게 전개되는데도 한국 정치권이나 유력 대선후보들 어느 하나 머리카락 쭈뼛 세우고 비장한 메시지를 내놓는 이가 없으니 개탄스럽다. 핵공격의 분명한 징후가 포착됐다면 선제타격은 의미 있다. 그러나 그저 위협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타격은 한반도의 궤멸적 운명을 막기 위해 억제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한 이상 트럼프 대통령은 주먹보다는 '전략적 대화'를 먼저 가동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역사적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진심 바란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2-10

[진맥 세상] "다 고독하다, 인정하고 즐겨라"

지구는 고독하다. 매일 바라보는 태양이 항상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물리적 거리는 참으로 아득하다. 책 '김상욱의 과학공부'는 우주가 얼마나 광대하고 텅 비어 있으며 하나 하나의 별들이 얼마나 외로운 지를 실감나게 설명해준다. 지구가 모래 알갱이 크기라고 가정해보자. 태양의 크기는 얼추 오렌지에 해당한다. 오렌지 옆에 모래 한 톨을 그려보면 지구가 얼마나 작은 지 실감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래알(지구)과 오렌지(태양)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대략 6미터다. 6미터 거리를 두고 있는 모래 한 알과 오렌지 하나가 바로 지구와 태양의 관계다. 그 오렌지가 부산역 광장분수대에 놓여 있다고 가정한다면 태양계 8개 행성 중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은 부산역 플랫폼 정도에 위치한다는 것이 부산대 김상욱 교수(물리학)의 설명이다. 태양계 바깥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센타우리'에 도착하려면 일본 홋카이도 북쪽까지 1600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쉽게 말해 1600킬로미터 이내에는 오렌지(태양) 한 개랑 모래 알갱이(행성)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김 교수는 "주변에 무언가 물질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생명체는 지구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물질이다. 더구나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나와 같은 종(種)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론적 이유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그 '고독한' 지구에서 만난 인간들은 그 '우주론적 이유'로 서로 사랑하고 외로움을 달래면서 행복할까. 미래 진단의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본사 칼럼니스트)는 오히려 "우리는 끔찍한 세상에 살고 있고 머잖아 이곳은 더욱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의 저서 '언제나 당신이 옳다'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이 처한 여건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지출로 최대한의 공공서비스를 요구하는 무리들이다. 아탈리는 이런 인간 군상을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로 규정한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고, 체념하며, 속박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특성을 갖는데 현대인의 군상이 이렇게 변하면서 남들에게 베푸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겉으론 개인주의가 팽배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역설의 사회라는 것이다. 아탈리는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은 희망이 없으며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자기 자신 되기'로 가는 5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인식한다, 스스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 고독을 인정하고 아무에게도(심지어 신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내 삶의 유일성을 파악한다, 내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로 요약된다. 아탈리는 "어떠한 타인도 인간의 조건에서 생긴 고독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표현할 수 없다. 필연적인 고독을 인정하고 즐겨야 참 자아를 찾을 수 있다. 당신의 삶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간주하면서 살라"고 조언한다. '자기 자신 되기'를 통해 타인에게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창의적이 되고, 그로 인해 서로 도움을 주며, 풍요·평화·인내·자유가 우세해지면서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아탈리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고독에 순응하며, '체념하고 요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는 삶을 살 때 고독한 지구에서 '기적처럼' 만난 같은 종 인간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1-27

[진맥 세상] 양(陽)의 과잉시대

음양(陰陽)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건강생활에 매우 요긴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별로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체질 얘기를 많이 한다. 사상체질, 8체질 하다보면 복잡하다. 전문가 영역 같아서 한두마디 들은 것으로 피상적인 상식을 갖는 데 그친다. 그런데 체질을 음체질·양체질로 딱 나누면 쉽다. 양은 밝음·따뜻함·활동적·건조함 등의 성질을 갖는다. 음은 반대로 어두움·차가움·비활동적·습함 등의 성질이다. 이런 음양의 특성을 고려해 체질을 양체질, 음체질로 구분할 수 있다. 양체질인 사람은 대체로 목소리가 생생하고 빠르다. 몸에 군살이 별로 없고 체온도 높다. 성격도 외향적이고 화도 잘 내며 몸놀림이 민첩하다. 반면 음체질인 사람은 목소리가 낮고 느리다. 군살이 많고 손발이 차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내성적이고 무던한 성격이며 몸놀림은 둔한 편이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놓고 보면 대충 내가 어느쪽 체질인가 하는 감이 잡힐 것이다. 음양은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다. 양체질 또는 음체질로 굳어지는 것은 건강상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양체질이 강한 사람은 음의 성질을 많이 갖고 있는 음식을 섭취하고, 음체질은 양의 성질을 갖고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좋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친 체질이 가운데로 모아질 때 이를 '간성(間性) 체질'이라 하여 이상적으로 본다. 식이요법 전문가인 이시하라 유미 박사가 제시하는 구분법에 따르면 음성식품은 따뜻한 지방에서 나며 수분이 많고 신맛에 주로 흰색·청색·녹색을 띤다. 바나나·파인애플·레몬·토마토·오이·식초·카레·커피·우유·흰빵·백설탕·맥주·위스키 등이 찬 성질의 음식에 속한다. 반면 양성식품은 주로 추운 지역에서 나며 딱딱하고 짜고 붉은색·주황색·검은색을 주로 띤다. 고기·계란·치즈·생선·당근·생강·홍차·사케·레드와인 등이 따뜻한 성질의 음식들이다. 음체질은 양성식품을, 양체질은 음성식품을 섭취하면 건강한 간성체질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체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간성식품으로는 현미·검은빵·감자류·조·피·콩·호박·사과·포도·체리·자두 등을 권한다. 몸이야 개인이 식생활을 조절하면 건강한 간성체질로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몸 밖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양(陽)이 차고 넘치고 있다. 양의 과잉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사람들도 양을 좇는 세태에 매몰되면서 평화의 기운을 느끼기 보다는 무엇인가 병든 시스템에 끼여 있는 불안감이 상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시·출세·외양·경쟁이 두드러진다면 그 사회와 삶은 양의 가치가 지배한다. 반대로 겸손·만족·내면·실속·공존은 음의 가치다. 함께 더불어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마음보다는 오로지 나의 이익을 좇고 그 승자만을 축하하는 사회라면 양이 과잉하여 건강을 잃은 상태다. 그런 사회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그에 함몰된 인성 또한 병들 수밖에 없다. 한방의 음양 치료법은 간단하다. 음양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병이 난다. 양(뜨거움)이 많으면 음(차가움)의 약을 써서 식혀주면 치료가 된다. 식혀주지 않으면 뜨거움이 위로 치솟아 죽을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양이 차고 넘치는 사회를 고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삶이 지치고 공허감이 든다면 한번쯤 양을 향한 달음질을 멈추고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떤 계획으로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외양과 내면을 함께 추구하는 음양의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지. 삶의 충만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원영 / 논설실장

2017-01-13

[진맥 세상] 5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장애물로만 생각한다. 그들은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아무도 미래를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가 오는 순간, 그것은 다시 현재가 된다."(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중에서)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계절에 "아, 또 한 살을 먹는구나"하면서 나이를 생각합니다. 나이가 차곡차곡 쌓이면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올해도 별로 남긴 것 없이 시간만 축냈구나, 이런저런 회심(悔心)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런 마음이 드니 다음 연말에는 이런 아쉬움을 갖지 않겠다며 결심을 세웁니다. 운동하자, 공부하자, 여행하자, 자격증 따자, 담배 끊자…. 많은 결심들이 세워지지만 만족스러운 결실을 낳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 사는 것이 그러하니 후회하고 결심하고 또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고 쌓인 나이를 꼽아보며 씁쓸하게 웃음짓는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요. 독일의 영성 저술가 도리스 이딩이 쓴 책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한 노인이 손전등을 들고 집 밖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이웃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정원에서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웃사람은 "여기는 정원이 아닌데 왜 여기서 손전등을 들고 열쇠를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여기가 더 밝아서요"라고 답했다. 정원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단지 밝은 곳이라는 '허상'을 좇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지금의 삶'을 강조합니다. "소망이나 근심 때문에 과거나 미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항상 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하는 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초점을 과거와 미래에 맞추고 있는 한,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시공을 초월한 그 무엇과 교감할 수 없다. 과거와 미래에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한, 우리는 잘못된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그 노인과 다를 게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잘못된 장소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믿으며 끝도 없이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믿음과 확신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본질을 벗어난 잘못된 허상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성찰이 필요합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불편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과 의식을 지금 이 순간에 점점 더 자각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의 사슬을 끊고 완전한 충만에 이르는 길은, 지금 이 순간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5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지금을 학대하고, 가진 것에 불만족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소원하게 대한다면 결국 '현재'를 잃어버린 삶이 된다는 교훈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을 사는 삶만이 진짜 삶이고 그런 삶을 산다면 나이들어가는 것의 초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를 사는 삶의 기본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6-12-29

[진맥 세상] 최순실 '찬가'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듯,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희망을 읽는다. 지금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목도하면서 한숨과 분노가 온통 지배하고 있지만 그 암울한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면 더 살 만한 세상이 올 것이란 역설적 기대가 커진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험로를 관통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온 국민, 특히 젊은이들의 정치적 각성을 꼽겠다. 교실에 묶여 사생결단 공부에만 매달리고, 엄혹한 취업난에 딴 생각할 겨를이 없이 오로지 개인의 '생존문제'에 급급했던 젊은이들이 대거 거리로 나왔고,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어른들이 저지른 불의함이 무엇인지, 다음 세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구했다. 개인주의에 매몰되고 공동체 의식이 미약했던 청년들이 사회.정치적 이슈에 눈을 뜨고 어른들의 행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다음 선거부터 던질 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정치를 방관하고 외면했던 젊은이들은 대거 투표장으로 나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줄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각성한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나가면 정치는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기득권층이라는 사람들의 추악한 본질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도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서슴없이 팔 수 있고 공정한 루트가 아닌 은밀한 동굴에서 밀거래를 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부패 기득권층의 민낯을 분명하게 목도했다. 국민들을 위해 나눠져야 할 재물들이 개인의 잇속으로 챙겨졌고,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공직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자리와 이권에 눈이 멀어 비선의 충견이 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국민들은 그들의 본성을 깨달았다. 돈과 권력을 가진 부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감시와 단죄는 더욱 엄격해질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들의 축제는 이전같지 않을 것이다. 분단 70년을 관통하며 지긋지긋하게 국민들을 양분시켜온 보수.진보의 이념주의 시대가 종언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최순실이 역설적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이슈가 이번처럼 보수.진보 대립없이 거대한 공동화를 이룬 적은 없었다. 국민들이 이념주의를 벗어나 '부정의에 대한 공분'으로 하나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에 녹슨 보수.진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할 이념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정의와 공공성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정의로운 가치 앞에 편가르기 이념논쟁은 하찮기 그지없음을 국민들은 이제 깨우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돈과 권력이 가치의 중심이 되는 물신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었다. 사람들이 의식과 주체성을 상실한 채 속물사회의 무한경쟁에 끝도 없이 매몰되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자살률 세계 1위' 나라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그렇기에 이번 사태로 모아진 국민들의 함성을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와 가치관을 세우라는 명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물신이 지배하고 정신이 고갈된 사람들이 사는 그곳은 껍데기 사회다. 정의가 실현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있고 공동체 가치가 우선되는 그런 사회가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최순실은 어쩌면 한국사회가 왜 '헬조선'이 되었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 은인인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단어를 빌려 맺는다. '혼이 비정상'인 나라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간절히 원한다면 '우주의 기운'이 대한민국을 도와줄 것이다.

2016-12-15

[진맥 세상] 암은 그냥 방치하라고?

가끔 건강 강연 요청을 받는다. 그럴 땐 반드시 시간을 내서 응한다. 이유는 하나다. 의료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려주기 위함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프면 약 먹고, 병원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의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따른다. 맹신 수준이다. 그럴 만도 하다.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약과 병원은 병을 낫게해 주는 '좋은 것'이란 이미지가 뇌리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학적 견해를 알게 되면 보다 지혜로운 판단을 하게 된다. 맹신은 비단 건강 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도 현명한 결정을 못하게 한다. 맹신을 없애고 지혜로워지려면 공부를 하고, 많이 들어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강연에서는 약에 의존하면 절대 건강해질 수 없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그것을 유발한 식생활과 생활습관을 고쳐야지 그걸 방치하고 약에 의존하면 몸은 더 망가진다, 건강한 식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는 요지로 말한다. 결론하여 소식하고 채식 늘리고, 익힌 음식(화식)보다는 익히지 않은 음식(생식)에 익숙해지라고 권한다. 강연 후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암치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조기검진해서 치료하는 게 최선이지요?" 이렇게 답한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권면하기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판단은 오로지 자신만이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암진단을 받았다면 치료를 받지 않고 그냥 놔둘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암치료 무용론을 주장하는 일본의 암전문의 곤도 마코토의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간 수만 명의 암환자를 진료했고 10만 시간 이상 세계 의학논문과 데이터를 읽었다고 했다. 임상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유사암으로 요절하는 사람, 진짜암이어도 장수하는 사람'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암에는 전이가 되지 않는 유사암, 전이가 되는 진짜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유사암은 그냥 놔둬도 생명에 지장이 없고, 전이암은 아무리 치료를 해도 결국은 생명을 앗아간다.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는데 검진을 통해 암이 발견되었다면 대부분은 유사암이다. 전이암은 조기검진이라고 해도 십수년 진행된 것이어서 고칠 수가 없다. 평소 멀쩡하던 사람이 검진으로 암을 발견하고 이를 치료하다가 면역 약화와 부작용으로 죽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검진에 의한 불필요한 진료와 부작용을 너무도 잘 아는 그는 평생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 결국 유사암은 놔둬도 괜찮고, 진짜암은 절대 고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암은 그냥 방치(암온존요법)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는 기성 의료계에선 거센 반발을 받았지만 의료정의를 실현한 공로로 기쿠치간상을 수상했다. 암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의료계 상식에 대해서 그는 "암 치료는 의료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다. 모두가 열심히 암 검진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의료계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고 꼬집었다. 책 말미에 '진짜암으로도 오래 사는 사람의 교훈'을 시처럼 정리해 놓았다. '의사에게 가지 말고/ 약도 먹지 말고/ 검진도 받지 않는다/ 칼로리나 혈압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잘 즐기고 걸으며/ 숙면을 취하고/ 혼자서 마음껏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져라/ 암이나 이상이 있어도/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을 권하면/ 잘라내지 않겠다고 말하며/ 백신이나 항암제는/ 부작용이 싫다며 거부하고/ 사람들에게 느긋하다는 말을 듣고/ 가야할 때는/ 웃으며 인사하는/ 그렇게 나는 죽고 싶다.'

2016-11-24

[진맥 세상] 난세에 맹자를 다시 읽다

맹자는 기원 전 3세기(BC372~BC289) 중국 전국시대 학자다. 그의 사상을 담은 '맹자'는 정치·처세 등에 걸쳐 확고한 소신을 피력한 글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왕권에 저항하고 민의를 중시하는 내용이 많아 경서로 대접받지 못하다가 남송의 유학자 주자에 의해 13세기에 비로소 4서 반열에 오른다. 맹자는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보태 왕도정치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한국 정치가 '최순실 게이트'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지금, 맹자가 2000년 역사의 두께를 젖히고 찾아온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와 주셨으니 역시 이 나라에 이익을 주시려 함입니까." 맹자가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利)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은 어찌하면 내 집이 이로울까 생각하며, 선비나 백성들은 제 한 몸의 이익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모두가 서로의 이익만을 취하게 된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최순실 일파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온갖 이권에 개입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한 작금의 한국 상황이 오버랩된다.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국가적 이상이나 가치관은 보이지 않고 오직 물신숭배로 치달아 너도나도 돈과 권력의 해바라기가 되어 가고 있는 '얼빠진' 대한민국의 현주소와도 무관치 않다. 맹자는 '이익'을 말하는 왕의 면전에서 어짐(仁)과 의로움(義)이라는 가치를 더 중시하라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나라와 백성의 정신세계가 무엇으로 이끌어져야 하는가 하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맹자는 말한다. "진실로 의리를 뒤로 미루고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모든 것을 다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진 사람이 그 부모를 버리지 않으며, 의로운 사람이 임금을 뒷전으로 여긴 사람은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실 것이지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하필왈리·何必曰利)" 맹자엔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양혜왕이 궁중의 연못가에 서서 기러기들과 사슴들이 노니는 평화로운 모습을 즐기면서 맹자에게 "선생님도 이런 것을 즐기십니까"하고 묻는다. 맹자는 시경에 나오는 문왕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으로 지혜를 들려준다.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영대(임금이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누대)를 짓고 연못을 팠으나, 백성들은 그 일을 기쁘고도 즐겁게 여겨 그 누각을 영대라 부르고 그 연못을 영지라 부르며 많은 사슴과 물고기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즐겨하였습니다. 옛날의 왕들은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 하였으므로 마땅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과 왕이 어떻게 하면 서로 소통하고 믿음으로써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지를 은유로 들려준다. 도올 김용옥은 지난 9월 펴낸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에서 청치철학사를 언급하면서 역시 맹자를 인용한다. "(맹자는)모든 제후의 통치는 민중의 동의가 없이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며, 민심을 얻지 못하는 권력자는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주는 가벼운 존재이며 중하게 여겨야 할 존재는 민중이다(군경민중·君輕民重).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군주는 군주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은 인(仁)을 파괴하는 '한 또라이 도적놈'에 불과하다." 도올이 마치 최순실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싶다. 물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정신은 피폐하고, 미래 비전이 박탈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세상. 맹자가 지금의 지도자에게 꾸짖는다. "정의를 구하지 않고 어찌 이익만 찾으십니까."

2016-11-10

[진맥 세상] 박근혜·최순실의 '간화범폐'

간이 안 좋으면 기침이 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간이 폐를 침범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병증을 간화범폐(肝火犯肺)라고 한다. 간의 화기가 폐를 침범해서 병을 유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간의 화기란 무슨 의미일까. 간은 원래 부드러운 장기다. 피를 저장하고, 기운을 소산시키고 배설해 온 몸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간의 소설(疎泄)작용이라고 부른다. 간이 부드럽게 소설작용을 잘 해내면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의 소설작용에는 자주 문제가 발생한다. 간병은 정서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화를 잘 내거나 억울(조급)한 마음(스트레스)이 풀리지 않으면 간에 화(불)가 쌓인다. 또 하나는 소위 '간땡이'가 커질 때다. 간의 소설작용이 필요 이상으로 활발하게 나타나면서 기운이 넘쳐날 때다. 흔히 '간이 크다'고 말할 때는 간의 소설작용이 항진할 때로 보면 된다. 간에 화가 쌓이거나 간땡이가 커질 때는 소설작용에 장애가 생기고 간에 쌓인 화기는 옆에 있는 폐를 침범하게 된다. 이것이 간화범폐다. 기침을 계속하거나 심하면 각혈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 상태까지 진행되면 폐 뿐만 아니라 몸의 진액을 생성하는 비장의 기능도 방해를 받게돼 결국은 기와 음액이 모두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벼랑끝으로 몰고간 최순실 스캔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면서 불현듯 두 사람의 간 건강 상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박 대통령의 '소설기능'을 상실한 간, 최순실의 '커진 간땡이' 말이다. 박 대통령을 향해 언론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이 불통과 고집이다. 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원인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 줄곧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항상 오불관언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화살을 피해갔다. 다양한 의견을 놓고 부드럽게 대화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보다는 그와 각을 세우는 인물들은 예외없이 잡초 뽑듯 뽑았다. 그러다보니 박 대통령의 주변에는 예스맨들만 남았고, 박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에 그저 찍소리 못하는 참모들만 그를 에워쌌다. 이런 내각에는 소통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상명하복, 복지부동만 팽배할 뿐이다. 누구하나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도 없었다. '소설기능'을 상실한 간은 화를 불렀고, 기침하고 피를 토하는 간화범폐 지경까지 도달해버린 것이다. 기와 음이 소진된 박 대통령이 예전같은 건강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순실은 '간땡이'가 너무 커져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다. 아무런 공적 책무도 맡지 않은 사람이 다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이용해 돈을 챙기고 권력을 행사했다. 간땡이가 커지면서 누리던 권세에 취해 간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정작 몰랐다. 너무 오래 커진 간은 급기야 자신은 물론 대통령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병이 위중한 상태까지 가지 않으려면 몸에 조금 이상이 왔을 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상 신호가 왔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하던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면 더 큰 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 낙인 찍힌 불통, 고집이란 말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오늘과 같은 파국적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아차 하는 마음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 정도의 국정난맥을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때가 너무 늦었다. '소설작용' 잃은 간이 병을 부르듯, 소통 잃은 대통령이 나라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한의학 박사>

2016-10-28

[진맥 세상] 뱃살에 대하여 묻는다

자기가 쓴 책을 제발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가 있다. 이유는 다들 책을 읽고 몸매가 날씬해지면 저자의 경쟁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이런 조크를 던진 이는 '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킨다'라는 책을 쓴 일본 외과의사 나쓰이 마코토. 그가 말하는 간단한 다이어트법은 '당질(탄수화물과 설탕류) 제한법'이다. 당질만 줄이면 확실하게 살이 빠진다고 한다. 가상 인터뷰를 통해 책의 내용을 들었다. -개인적인 체험이 있나. "의대 졸업할 때 체중이 59kg이었는데 사회생활하면서 70kg로 늘었고 30년 간 유지됐다. 쌀밥을 줄이고 사케를 소주로 바꾸는 당질제한식을 했더니 6개월 만에 11kg가 빠졌다. 고혈압과 고지혈증도 씻은 듯이 없어졌다. 내가 그동안 한 것은 탄수화물(밥·면류)을 줄인 것과 사케를 소주로 바꾼 것 뿐이다." -다른 생활의 변화도 경험했나. "점심 식사 후에 반드시 찾아오던 졸음이 사라졌다. 나는 30년 이상 간을 쉬게 한 날이 없는 애주가인데 숙취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숙취는 술을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술과 함께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왜 소주로 바꾸었나. "사케나 맥주, 막걸리 등 양조주엔 당질이 많다. 당질제한을 한다면 소주, 위스키, 보드카, 데킬라 같은 증류주가 좋다." -숙취의 원인이 당질이라고? "그렇다. 밥·면류는 소화가 잘 되고 고기는 잘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 반대다. 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은 위산에 의해 금세 소화가 돼 위체류시간이 수십 분 정도인데, 밥이나 면류는 위산으로 소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서너 시간 위에 머문다. 술자리 마지막에 누룽지나 우동을 먹는 건 최악이다. 자는 동안에도 서너 시간 위산이 분비돼 역류성 식도염이나 숙취를 부른다." -당질제한 하면 뭐가 달라지나. "쌀밥이나 국수 한 그릇은 설탕으로 치면 각각 4g짜리 각설탕 14개 분량의 포도당을 만든다. 당질 위주의 식사는 단것이 단것을 부르는 '당질중독'을 부른다. 영양이 풍부한 데도 마음이 당질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질제한을 하면 공복감을 느끼지 않고 배가 부르지 않아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습관이 없어져 하루 한 끼를 먹어도 문제가 없다." -탄수화물은 필수영양소 아닌가. "영양학에는 당질(탄수화물), 단백질, 지질을 3대 영양소로 규정해놓았다. 그러나 당질제한을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비만·당뇨·고혈압·고지혈증이 치유되고 활력이 생겨 점점 건강해진다. 우리 몸은 아미노산으로 포도당을 합성하는 '당신생'이라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단백질만 있으면 스스로 포도당을 만들어내 필요한 혈당치를 유지한다. 당질은 필수영양소가 아니라 커피나 담배처럼 중독되는 기호품이다. 섭취함으로써 다양한 문제만 일으키는 존재다. 당뇨병이 고쳐지지 않는 건 당질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권장식을 먹으라는 건 계속 약을 복용케 하려는 사기적인 치료다." -당질제한하면 왜 살이 빠지나. "정상인의 혈액은 100mg/dl(=1g)의 적정 혈당치를 유지한다. 당질제한식을 하면 외부에서 포도당을 보충하지 않고 몸(=단백질)을 '깎아서' 포도당을 만든다. 이 과정의 에너지는 지질을 분해해 얻는다. 살이 빠지는 메커니즘이다. 반대로 당질식을 하면 여분의 포도당이 지방으로 저장돼 뱃살이 찌는 것이다." -당질제한 권장식을 알려달라. "고기·어류·달걀·콩·야채·버섯·해조류·아보카도(기타 과일은 과당이 많아 비만의 원인)·치즈·견과류·식용유 등이다. 당질제한을 실천하다보면 뭘 먹을지 혀가 저절로 알게 된다."

2016-10-06

[진맥 세상] 법륜의 눈으로 본 북한 수해지원

바로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에게 강연 참석자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법륜의 즉설은 이랬다. "옳다, 그르다는 어떤 기준의 문제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문화나 환경에 따라 다르다. 기준이 다르다보니 가치관도 달라진다. 가치관은 주관인데 이를 객관화해선 안 된다. 어떤 가치관도 절대적일 수 없다. 객관화 할 수 없는 것을 객관화하려는 데서 갈등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사회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법륜은 '생태계'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자연 생태계는 가치관이 없다. 따라서 선악이 없다. 선악은 인간사회에만 존재하는 정신현상이다. 생태계를 벗어나지만 생태계를 조화롭게 하는 행위는 선이고,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악으로 본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악은 아니다. 생태계 순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면 선이 된다. 생태계에서 암수, 흑백을 차별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라고, 흑인이라고 차별하는 인간의 행위는 비생태계적인 악에 속한다는 것이 법륜의 가르침이다. 법륜의 이야기는 북한의 대홍수로 이어졌다.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에 걸쳐 발생한 태풍 라이언록은 북한 당국의 발표대로 '해방 후 처음 있는 대재앙'을 가져왔다. 138명이 죽고 400여 명이 실종됐다. 1만7000채의 가옥이 완전 수몰됐고, 14만여 명이 길거리로 내몰려 있다. 한국정부는 54개 대북지원단체 연합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북한 수재지원을 위해 낸 방북신청을 거부했다. 핵실험을 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한 참석자가 법륜에게 "북한 핵실험 때문에 북한 이재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법륜은 줄곧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앞장서 왔다). "전쟁을 하더라도 민간인을 학살해서는 안 되고, 적군이라도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죽이지 않고 송환하거나 교환하는 것이 유엔의 정신이다. 미국도 인도적 지원을 금지하지 않고 있으며 대북제재에도 예외다. 유엔은 국제사회에 대북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설사 남북이 군사 충돌 중이라도 인도적 지원은 해야하는 것이 유엔헌장의 정신이다." 이런 입장이기에 법륜이 이끄는 정토회는 한국정부가 대북지원을 금지함에 따라 중국을 통한 우회 지원과 해외모금 등을 병행하며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북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당국과 주민의 고통을 분리시켜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대북지원단의 방북 신청을 불허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는 북한이기에 한국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법륜의 선악 개념으로 볼 때 생태계적이다. 선도 악도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어려움에 처한 동족을 돕는 것은 선한 행동에 속한다. 그런 이유로 법륜은 북한 수재민돕기는 권장되어야 할 '선행'이라고 강조한다. 헌법의 대통령 직무조항에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평화적 통일'은 악이 아니라 선이 쌓여야 가능한 얘기다. 남과 북 중에서 선을 베풀 수 있는 여유는 어디가 많을까. 북한 이재민 돕기를 금지시킨 박 대통령은 과연 헌법적 직무 규정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일까.

2016-09-22

[진맥 세상] 죽으러 갔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쯤이다. 대장암 말기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조용히 죽으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게 마지막이다. 그가 멀쩡하게 나타났다. 그의 생존기는 극적이다. 절망 속에서 헤매는 수많은 암환자, 그리고 암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은 한국의 주요무형문화재 박찬수 목조각장의 수제자로 한때 LA한인타운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목초 김영복(61)이다. 목초는 한때 블링크라는 술집과 틈새라면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정열을 쏟던 사업은 술집 손님이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라면집 프랜차이즈도 허망하게 망했다. 얼추 200만 달러의 돈을 날렸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던 어느 날, 혈변이 나왔다. 치질인가 그랬다. 간헐적으로 혈변이 보였으나 대수롭지 않게 2년을 보냈다. 산악회 후배가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한국의 국군통합병원에 가기 위해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그는 군인가족이다). 비행기가 하강하려는 즈음, 그는 엄청난 하혈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겨우 정신차린 그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대장암 말기.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짐. 남은 삶은 2개월. 병원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미국생활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15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보름치 약을 쇼핑봉지 한가득 담아 주었다. 조용히 죽을 장소로 염두에 두었던 설악산 골짜기에 있는 가족의 빈 집으로 향했다. 들고 왔던 약은 개울물에 다 버렸다. 며칠 후 인근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래 저수지에 난리가 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물고기가 두 트럭 분량이나 죽어서 떠올랐다는 거였다. 목초는 지금도 그 저수지 사변이 그가 버린 약 때문으로 믿고 미안해한다. 신변 정리를 위해 미국에 왔다. 부인과 이혼하고, 재산을 넘긴 뒤 다시 한국의 산골 집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에 있던 2000원으로 라면 하나와 초콜릿 사먹고 남은 300원은 모금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산 속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었다. 머릿속 잡념도 덩달아 없어졌다. 죽기 전에 작품이나 몇 개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에 조각에 전념했다. 물은 앞의 개울물로, 먹을 것은 밥·된장·마늘·간장·양파·멸치로 해결했다. 풀도 뜯어 먹었다. 주로 새순을 잘라 먹었다. 두어달이 지났을 때 '어? 왜 안죽지?' 그랬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눈이 오고 싹이 돋고 하는 걸 보면서 대략 1년쯤 지났음을 느꼈다. 쓰러져서 실려갔던 그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무팀들이 깜짝 놀랐다. 환자 명부엔 이미'사망' 도장이 찍힌 상태였다. 온갖 검사가 진행됐다. 암소견 없음으로 나왔다. 병원장은 8명의 '조사반'을 그가 살았던 곳으로 급파했다. 이틀을 머물며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조사했다. 보고서는 공기·물·음식·정신이라고 결론 냈다. 목숨이 조금 연장되었겠거니 하면서 살다보니 5년을 산 속에서 보냈다. 내가 암환자라고 생각하고 조언을 부탁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가라, 채식해라, 문명을 멀리해라, 마늘(끓인 간장에 넣어 독성을 빼고 먹었단다)과 양파를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죽으려던 '목적' 달성에 실패한 목초는 LA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갤러리를 열었다. 그는 다음달 8일 오프닝 행사와 함께 새로 태어난 체험기도 들려준단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멋진 제3의 인생을 기원한다.

2016-09-08

[진맥 세상] '암을 고치는 미국의사들'

'암을 고치는 미국의사들'(수제인 소머스 지음)이란 책은 암환자들에게 복음서와 같은 책이다. 46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을 쓴 이는 놀랍게도 1980년대를 주름잡던 섹시스타 수제인 소머스다. 영어 원제는 'Knockout'이다. 암을 넉아웃시키는 의사들에 관한 책이라는 뜻이다. 수제인은 개인의 끔찍했던 경험이 계기가 돼 건강전문 저술가가 되었고 도합 18권을 썼다. 수제인은 몇 해 전 온몸의 발진 증상으로 입원했다가 그를 진찰했던 의사 6명 모두로부터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의료진은 항암치료를 권했다. 수제인은 평소 깨달은 대로 항암제.수술.방사선으로 대표되는 통상적인 암치료를 거부했다. 삶의 질을 극도로 떨어뜨리고 생명연장 효과는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몇차례 조직검사를 통해 암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는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수제인은 '공격적인' 현대 암치료법이 아닌 방법으로 효과적인 암치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은 이런 의사들에 관한 심층 인터뷰를 담았다. 등장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현대 암치료술에 한계를 느끼고 대체의학.통합의학에 눈을 떠 암을 더욱 '부드럽게' 관리하고 삶의 질을 높이면서 치료효율도 높이고 있는 의사들이다. 그러나 이런 의사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이나 제약회사 병원 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피소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의사들을 구해준 것은 성공적으로 치료받은 수많은 환자들이었다. 수제인은 이 책에 소개된 의사들은 기존 의료계의 잘못되고 경직된 암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용감한 길을 걷고 있는 의사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저술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악몽 같았던 입원 생활을 통해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 의사들이 존재하고 치료성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들에 대해 더 파헤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어두운 순간에 놓였을 때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제인은 책 전편을 통해 환자들은 '다른 치료방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의사들은 이런 환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제인은 "이 책은 암환자가 다른 효과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소개된 의사들의 치료법은 매우 성공적으로 암을 치료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썼다. 수제인은 "해로운 화학약품과 공격적인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암을 관리하고 치유하는 의사들의 경이로운 업적을 소개함으로써 암환자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추천사를 쓴 줄리안 위태커 박사는 "그릇된 패러다임에 기반해 출발한 '암산업'이 지난 100년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암치료 전문의를 택할 때 "다른 종류의 치료법을 사용하는 의사의 소견을 들어봐도 되나"라고 질문을 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의사는 피하라고 조언한다. 어느 누구도 환자 본인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히 LA에서 자연요법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조한경 척추전문의가 번역해 더욱 신뢰가 간다. 암에 걸리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책은 그런 환자들에게 치료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암은 '관리'하고 치유할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공포가 사라졌다는 저자의 말이 많은 암환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책에는 등장하는 의사들의 연락처도 소개되어 있다.)

2016-08-25

[진맥 세상] "디스크는 실존 않는 환상 속 괴물"

"디스크니 척추협착증이니 하는 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의사들의 상상력과 상업성이 만나서 만들어진 '환상 속의 괴물'에 불과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그것들을 치료한다고 해서 통증 역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잔인하게 말하면 의사들은 이 괴물을 당신 앞에 대령해 놓고 그에 대한 공포를 빌미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는 30년 차 정형외과 의사 황윤권(59)씨다. 그가 올해 초 펴낸 '디스크 권하는 사회'에는 기존 통념을 뒤집는 주장이 가득하다. 그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허리.관절 환자를 치료하며 무수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수술과 약물로 낫지 않고 재발을 거듭하며 효과를 보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기존 의학교과서의 내용과 치료법에 의심을 거듭했다. '내가 배우고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환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병의 경과를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그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 나갔다고 고백한다. 그는 결국 디스크나 척추협착증이란 병은 없으며 허리통증은 척추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고 환자 스스로 관리해 나가도록 지도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지금 부산에서 개업하고 있지만 그 흔한 X레이 MRI 약 처방이 없는 '3무병원'으로 유명하다. 황 전문의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미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한국언론에도 소개되었다. 아직 이를 접하지 못한 '허리 아픈' 독자들을 위해 골자를 문답으로 소개한다. -디스크 탈출이나 척추협착으로 신경이 눌려 아픈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 "수술 과정을 많이 지켜보았다. 의사들의 눈에 직접 보이는 '수술시야'에서 실제 부위를 확인해 보면 신경은 '눌려져 있지 않고' 아주 멀쩡하게 통통하게 원래의 모양대로 잘 있다." -그럼 신경을 누른다는 것은 잘못 인식된 것인가. "척추신경은 연막.지주막.경막 등 세 겹으로 싸여 있고 막 사이에는 뇌척수액이 완충작용을 하며 지방조직으로 보호돼 일종의 두개골 역할을 한다. 물렁한 디스크나 좁아진 척추관이 척추신경을 눌러댈 수 없다." -그럼 허리.허벅지.종아리 등의 통증은 왜 생기나. "근육 때문이다. 근육은 원래 늘어나고 수축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런 기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근육이 경직되고 그것이 말초신경을 압박해 통증을 유발한다. 긴장이 쌓일수록 나이가 들수록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증세가 복잡하게 나타난다." -근육을 늘리고 줄이는 운동을 안 하면 통증이 유발된다는 말인가. "어릴 적 손을 들고 벌을 서면 어떤가. 팔의 근육이 경직되어 통증이 오지 않나. 같은 이치다. 허리 근육을 쓰지 않으면 경직성이 쌓여 만성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허리 통증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근육을 풀어주는 게 답이다. 아픈 부위를 중심으로 늘려주고 줄여주는 운동을 반복하고 주물러주고 두드려주는 방식으로 혼자서 할 수 있다. 악~하고 아플 정도를 극복해야 좋아진다." 책 후반부는 각 부위별 통증을 이겨낼 수 있는 스트레칭과 국부 마사지를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다.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론은 간단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진정성을 알리고 싶었고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고정관념은 깨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진화하지 못하고 갇혀있을 것이다. 황 의사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심정으로 디스크를 '환상 속 괴물'로 정의한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2016-08-04

[진맥 세상] '약'을 향한 모태신앙급 믿음

'약'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뭔가 나쁜 것(질병)을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 먹으면 왠지 안심이 되는 귀한 것? 많은 사람들이 약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심리적·육체적으로 의존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합니다. 보통사람들이 약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느낌은 일종의 '모태신앙'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각종 약과 가까이 합니다. 이거 먹어야 낫는다, 이거 먹어야 안 아프다, 하면서 귀에 박히도록 약의 찬사를 듣게 됩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약 먹으라는 부모·약사·의사의 말을 듣습니다. 약 좋다는 수많은 광고를 접합니다. 무슨무슨 질병에 효과적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고 듣습니다. 이렇듯 보통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약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맹종 수준입니다. 간혹 약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더라도 어려운 데다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약에 대한 '믿음'이 바뀌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약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쌓아놓고 먹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은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자, 그렇다면 한 번 이런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불량 제약회사(Bad Pharma)'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국의 의사인 벤 골드에이커가 쓴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제약회사들이 약을 팔아먹기 위해 어떤 부도덕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그리고 제약회사에 유리한 면만 부각시키고 부작용은 숨기는 임상시험은 물론이고, 각종 학술지에 대필 저술가를 동원해 약을 홍보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의사들이 이 약을 처방하면서 환자와 의사가 모두 제약회사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약을 팔 수 있는 오만 가지 기막힌 상술' 챕터를 보면 기가 막힌 내용들로 꽉 차있습니다. 과거에는 병도 아니었던 것을 병이라고 선전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약을 팔아먹는 수법은 고전입니다. 제약회사들은 자기회사의 약을 의사들이 처방하도록 온갖 방법으로 마케팅 합니다. 판촉 사원을 통해 의사들에게 각종 향응을 베푸는 것은 일반화된 수법입니다. 평균적으로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비의 두 배에 해당하는 돈을 마케팅에 씁니다. 그 엄청난 돈은 결국 약값에 고스란히 반영돼 환자와 납세자의 부담으로 옮겨집니다. 제약회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에게도 약을 함부로 처방하고 남용케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의사와 약에 속지 않는 법'을 쓴 일본의사 미요시 모토하루는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사는 환자에게 올바른 말을 해야 하지만 (약이나 검사나 수술을 강요하는) 협박을 하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불가능하다. 생활습관이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30분 상담하면 병원 경영을 위한 보험료를 받을 수 없다. 결국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 없이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하고 진료시간을 짧게 한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현대 의료계의 현실입니다. 약은 증상을 없애줄 수는 있어도 원인치료는 할 수 없습니다. 질병을 야기한 원인을 없애야 근원치료가 가능한데 그것은 생활습관과 환경의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약을 장기복용할수록 부작용의 위험성은 높아집니다. 의사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와 약을 먹이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나쁜 의사, 공부 안 하는 무식한 의사, 지식도 많고 약보다는 환자 스스로 건강을 되찾도록 지도하는 좋은 의사입니다. 지금도 약과 의사에 대한 모태신앙급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2016-07-21

[진맥 세상] 살찌는 아마존, 늘어나는 홈리스

LA한인타운 도심 곁길을 걸어본 적 있으신지. 바깥 바람을 쐬려 짬을 내 산책하는 일이 잦다. 사무실을 나서며 맞는 자연 공기는 상쾌하다. 그러나 잠시. 건물 모퉁이를 돌아 걷다보면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추한 몰골이 드러난다. 길거리에 내다버린 침대나 가구, 깨진 가전제품 등이 수개월째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쓰레기가 흩날리고,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곳곳에 악취가 풍긴다. 그야말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도시 뒷골목 풍경이다. 요새는 여기에 하나 더 늘었다. 홈리스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도를 점령하고 텐트촌을 이뤄 아예 보행이 어려울 정도다. 온갖 잡동사니 생활도구(?)들을 끌어다 놓았으니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멍한 눈빛으로 몇 시간이고 한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끝없이 중얼거리는 이,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해 쓰러져 있는 이, 초점없는 눈동자에 반라의 차림을 하고 텐트 속을 들락거리는 여성, 악취는 진동하고. 어느 날 경찰차가 보이고 하얀 천이 바닥에 덮여 있으면 이름 모를 홈리스 한 명이 객사한 것이다. 홈리스 텐트촌 곁을 지나다보면 "이게 과연 인간의 모습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존엄권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참담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먹는 건 어떻게 구하는지, 어디서 씻기나 하는 것인지, 비가 오면 잠은 어떻게 자는지, 이들의 신세를 생각해보면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보다도 못하지 않나 싶다. 애완동물이야 때 되면 밥 먹고, 안전한 공간에서 잠 자고,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그들의 형편이 홈리스보다 백번 나아 보인다. 최근 LA지역 통계만 보더라도 카운티 노숙자 수는 4만7000여 명에 달하고, LA시에는 2만8000여 명의 노숙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숫자는 1년 전에 비해 11%나 늘어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니 가히 '홈리스 전쟁'이다. LA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스는 칼럼을 통해 "지금 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행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도높게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홈리스 증가의 원인으로 저임금, 높은 주택가(렌트비), 정신질환자 방치 등을 꼽는다. 쉽게 말해 지금의 수입으로 치솟는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한계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길거리로 팽개쳐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로페스가 '홈리스 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울린 같은 날, 인터넷 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주가는 지난 3개월간 거의 50%가 급등해 CEO 제프 베조스의 재산이 그새 180억 달러나 불어났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상거래 때문에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이 힘들다. 여러 매장에 나가서 구입하던 물건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결해버리니 소매업주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많은 소매업체들이 나눠가져야 할 상업의 과실을 아마존이 싹 쓸어가는 형국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런 식이니 부의 독점이니, 부익부빈익빈이니, 양극화니 하는 우려와 원성의 목소리가 커진다. 혹 '아마존 폐쇄'를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인이 나오진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회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라지고, 거리엔 추락한 인생들이 넘쳐나는데 아무도 아무에게 신경쓰지 않는 이 살벌하고 비극적인 공동체는 과연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것일까. 한껏 단장한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홈리스 곁을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무심한 도시의 공기가 서늘하고 무섭다.

2016-05-12

[진맥 세상] 마케팅과 교회

세상 돌아가는 게 온통 마케팅이다. 특히나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팔지 못하면 망한다. 팔아야 하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서비스·인지도·평가·네트워킹 등 무형의 재화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잘 팔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리고, 낙오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가장 좋은 마케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물건을 유능한 세일즈맨이 파는 경우다. 제품도 좋은 데다 세일즈맨의 탁월한 능력이 보태지니 가장 좋은 효율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고객의 반응이 신통찮은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할 때 세일즈맨은 힘들다. 물론 입담이 좋아 고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세일즈맨이라면 잠깐 판매 실적을 올릴 수는 있을 터지만 그게 오래가진 않는다. 제품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한 세일즈맨의 '기술'에만 의존하는 마케팅은 한계가 있을 것이 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다. 고객이 제품을 알아보고, 제 발로 찾아와서 사는 것이 최고다. 마케팅 얘기를 느닷없이 끄집어낸 것은 최근에 불거진 나성영락교회 당회 파동 때문이다. 당회에서 18명의 시무장로 중 14명이 담임목사의 리더십을 문제삼아 불신임 의견을 모은 탓이다. 김경진 목사가 부임한 이후 4000명 넘던 교인이 3000명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설교능력을 포함한 김 목사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교회 이슈를 마케팅에 비유하는 것이 좀 미안하긴 하지만 사실상 기독교를 포함한 현대 종교들의 작동원리를 살펴보면 '마케팅'의 범주를 벗어나 설명하기 어렵다. 신도를 확보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도, 헌금을 독려하는 것도, 큰 교회당을 짓는 것도, 그래서 많은 프로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설교 잘하고 신도들에게 매력적인 목사를 청빙하는 것도, 질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지 마케팅 원리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나성영락교회 담임목사 불신임 논란도 따지고 보면 김 목사의 '실적'을 문제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신도 숫자가 줄어든 것을 목사의 자질 탓으로 돌릴 만한 뚜렷한 근거가 있는가. 만약에 담임목사를 교체한다면 교인 숫자가 늘어나고 교회는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이 두 가지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것은 나성영락교회만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매년 줄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인 비율이 2007년 51.3%에서 2014년 46.5%로 사상 처음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 기간동안 9.4%가 기독교인으로 유입됐고, 13%가 떠났다. 개신교인 평균 연령은 50세인 반면 무종교인의 평균연령은 36세였다. 한인 교회에 청년부가 없어지고 축소되는 게 보편화됐고,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학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교인이 줄어들 일만 남았다. 전체적인 사정이 이러할진대 교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목사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기독교라는, 교회라는 '상품'이 왜 고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기독교인을 보고 부러워서 제 발로 교회를 찾아야 그게 진짜 '부흥'이다. 원인을 바로잡지 않고 증상만 가리는 대증요법으로는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없다. 나성영락교회 문제가 한인교계 전체의 자성과 성숙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희망일까.

2016-04-28

[진맥 세상] 정치는 생물인가, 그렇다

원래 자연 속에서 사는 동물은 인간과 같은 '잡병'이 없다. 자연 속 동물들은 유행병이나 상위 포식자만 피한다면 대부분 정해진 수명을 살고 자연사한다. 잡병에 걸려 수명을 단축시키는 예는 거의 없다. 온갖 잡병으로 자연수명을 누리지 못하는 동물군은 인간과 애완동물이 전부다. 그렇다면 왜 인간과 애완동물만 잡병에 시달려야 할까. 본질은 '자연에서 멀어진 인공적인 식습관과 과식'에 있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자연식을 한다. 자연에 널린 그대로 섭취하고 과식을 않는다. 그러나 문명은 인간을 자연식과 소식에서 멀어지게 했다. 날것보다는 익혀 먹고, 천연 상태보다는 각종 인공첨가물을 버무려 섭취한다. 애완견의 먹이와 생활환경도 '비자연적'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이 병에 걸리고 약과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하나의 패턴이 있다. 잘못된 식습관인지도 모른 채 '비자연적'인 식습관을 계속한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주변에서도 건강을 챙기라는 조언이 들려온다. 별일 있으려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조금 신경 쓰인다 싶으면 약을 먹는다. '이상신호'가 일시적으로 없어지면 정상이 됐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식습관은 계속된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다. 진작에 몸의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 큰 병은 대체로 이런 경로를 거쳐 발생한다. 몸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과 몸에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항상성(homeostasis)이 있다. 몸이 아프다가도 낫는 것은 인체의 오묘한 항상성 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항상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인풋(input)'을 멈춰야 한다. 잘못된 식습관을 지속하면서 항상성이 발동돼 건강해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다시 말해 몸의 이상신호와 주위의 염려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식습관을 깨달아 고치면 항상성이 작동돼 건강을 되찾고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은 이미 정치공학을 설명하는 유명한 말이 되어 있다. 정치는 유기체와 같아서 상황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생명(또는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번 한국 4·13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충격적인 참패를 겪고 쓰러진 모습을 보면서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각종 경고음이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지 않고 '나는 건강하다'며 허풍을 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신세를 진 뒤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어느 병자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세월호특위 무력화, 치졸한 유승민 밀어내기, 테러방지법 강행, 일방적인 위안부 한일합의, 개성공단 전격 폐쇄 등 집권 여당의 밀어붙이기 식 국정운영 스타일을 유권자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선거 며칠을 앞두고 탈북여성 집단귀순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또 어떤가. '국민을 졸로 보고 자기들이 조종하고 싶은대로 하는구나'하는 집단 불쾌 심리가 형성됐을 것이다. 그게 이번에 표로 분출됐다. 집권당이 중증의 상태로 나가고 있는데도 이를 감지 못한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선거를 눈앞에 두고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 "경제 발목잡는 무능한 국회를 심판해달라" "확 변모하는 20대 국회를 기대한다"고 릴레이 희망가를 불렀다. 이런 박 대통령의 말이 '야당을 심판해달라'는 메시지였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국민은 여당을 심판했다. 중태에 빠진 새누리당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아, 내내 건강할 줄 알았는데…진작에 몸에 신경 쓸 걸…."

2016-04-14

[진맥 세상] '더 끔찍해질' 세상을 견디는 법

'무라(村)'는 마을을 뜻하는 일본어다. 무라는 기존의 관습을 지키는 경향이 강하다. 마을의 관습을 따르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단자로 몰았다. '왕따'를 당한 사람은 무라 안에서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무라 안에는 무라의 관습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들만 공생한다. 이렇게 폐쇄적이고 집단적인 이익결집체의 모습을 갖춘 사회를 '무라사회'라 한다. 약과 검진을 남용하며 환자보다는 병원과 의사의 이익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의료의 생태계를 질타한 나토리 하루히코(돗쿄의대 방사선과 교수) 박사는 의료계를 대표적인 '무라사회'로 규정한다. "무라와 무라의 구성원은 기득권 수호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풍파 요소를 철저하게 억눌러 현상유지를 꾀한다. 무라에 불상사가 일어나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책임 추궁도 흐지부지 얼버무린다." 어떤가. 단지 의료계만이 아니고 정치.경제.법률.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무라사회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직감케 한다. 더 들어보자. "무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은 철저하게 배척한다. 무라의 인간은 이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도 쉽사리 내놓지 못하고 무라의 가치관에 맞춘다. 무라의 규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결국은 생각도 하지 않고 주장도 안 하는 무라 사람이 되어 간다." 어떤가.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해 작은 이익을 얻는 데 만족하고 몰개성.몰개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숱한 군상이 떠오르지 않는가. 인간들을 무라에 순종적으로 편입시켜 무라를 그대로 유지시켜 가려는 세력은 기득권층이다. 그들은 절대로 향유하고 있는 물질과 권력을 순순히 나눠주거나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기득권층은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자신들의 무라 구조에 저항하는 자들을 처벌, 왕따 등의 방법으로 배제시켜 이익을 지켜나간다. 무라는 변화.개혁.혁명 이런 것들을 지극히 싫어한다. 이익의 독과점 구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두 '아웃사이더'가 거대한 기득권 무라에 거침없는 공격을 하고 무라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에 침묵하던 유권자들이 열광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렵고 초조한 쪽은 역시 그동안 무라의 향기에 취했던 기득권 세력들이다.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는 폐쇄적인 무라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샌더스 돌풍은 그나마 미국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신작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냈다. 책의 부제인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으로 그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생각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삶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 개인은 운명을 체념하고 속박받는 것에 대한 대가로 '보조금 같은 공공서비스의 이기주의적인 소비자'가 된다. 그는 묻는다. '체념할 것인가' '자기자신 되기'에 성공해 자존감을 가질 것인가. "당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라. 이미 수립된 질서라 해도 다시 한 번 흔들어보라. 당신의 삶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간주하며 살아라."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무라사회의 자그마한 떡고물에 안주해 자존감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감 때문 아닐까. 무라사회에 아부하지 않고 통찰과 각성의 자존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탈리가 말하는 성공적인 인생 아닐까.

2016-04-01

[진맥 세상] 40년 경력 의사와 '고혈압' 인터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거의 빠지지 않는 주제가 건강이다. 놀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혈압약을 먹고 있었다. 이유는 한결 같았다. 안 먹으면 큰일 난다고 의사가 먹으라고 했단다. 혈압약을 먹으면 '정상혈압'이 되어 안심된다고 했다. 혈압약 장기복용은 위험하다는 이론을 소개하면 "그래요?" 하는 식이다. 혈압약을 먹거나 고민 중인 이들에게 보다 폭넓은 의료적 판단을 하라는 뜻에서 일본의 마쓰모토 미쓰마사 의사가 쓴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의 주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정말 고혈압은 병이 아닌가. "수축기 혈압 200을 넘거나 심장에 지병이 있는 경우 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고혈압이 병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고혈압은 왜 생기나. "몸에서 나타나는 각종 반응은 다 살려고 하는 작용이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몸속에서 혈압을 높여야만 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몸은 스스로 혈압을 높이는 것이다." -고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잘못된 상식이 아주 많다. BCG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핵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효과 없는 것으로 결론 나 접종하지 않는다. 고혈압이 위험하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정상혈압을 벗어났다면서 약을 권한다. "일본의 경우 1987년엔 고혈압 기준이 180/100이었고 '환자'는 230만 명이었다. 이것이 점점 낮아져 2011년엔 130/85에 '환자'는 5500만 명으로 늘었다. 고혈압 기준치의 조작이야말로 제약회사에 금덩이를 안겨주는 도깨비 방망이인 셈이다. 고혈압증은 혈압약을 엄청나게 먹이기 위한 상술이다." -고혈압이 있으면 뇌졸중(중풍) 위험이 높다며 약을 권한다. "뇌졸중에는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고혈압으로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 지주막하출혈 세 종류가 있다. 2006년 뇌졸중 환자를 분류하니 뇌경색이 84%로 대부분이고 뇌출혈은 13%, 지주막하 출혈 3%였다. 뇌경색은 혈압이 낮을 때 발생한다." -그러면 혈압약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혈압이 높아지는 이유는 혈류의 강도를 높여 혈관이 막히지 않게 하려는 몸의 생존 몸부림이다. 혈류가 약해지면 피의 응고물을 떠내려 보내지 못해 뇌경색에 이른다. 따라서 약으로 혈압을 떨어뜨리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뇌경색은 (혈압약을 처방한)의사가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혈압약이 뇌경색의 원인이 된다는 증거가 있나. "오구시 요이치 교수는 4만 명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비교해 혈압약을 먹은 사람의 뇌경색 발생률이 먹지 않은 사람의 두 배라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혈압약을 먹었기 때문에 뇌경색이 더 발생한 것이다." -혈압약의 다른 부작용은 없나. "혈압약에 있는 칼슘 길항제로 면역력이 약화돼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 혈압을 낮추면 뇌로 피가 잘 전달되지 않아 멍한 기분의 만성 지능저하를 부르고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이 가늘고 딱딱해지기 때문에 혈액을 몸 구석구석 돌리려면 높은 혈압이 필수적이다. 고령자의 혈압은 160~180이어도 괜찮다. 고혈압은 생명 유지 현상이다." -그래도 고혈압을 그냥 놔두면 걱정된다는 사람도 많다. "잘못된 상식 때문이다. 내가 제시하는 고혈압 대처법은 간단하다. 내버려두라. 이게 전부다.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의 혈압이 큰 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것이 40년 이상, 줄잡아 10만 명을 진찰한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이다." (*그래도 고혈압이 걱정된다면 소식하고 채식 늘리면 혈압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필자 주)

2016-03-17

"스페인어 영어식 동사 활용 배우다 기진맥진"

"스페인어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방법을 택하고 결국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마르띤 백 선생을 역사학자가 아닌 스페인어 저술가로 만났다. 그가 최근 문법책, 동영상 해설, 사전 등을 포함한 '마르띤 스페인어 신문법과 회화'라는 학습 패키지를 12년만에 완성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미국땅에서 마르띤 백 선생보다 스페인어를 잘하는 한인은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스페인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스;운 이론과 실제에 정통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한인들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영어권에서 만든 교재나 문법, 교습법으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같이 가까운 언어가 아닙니다." 백씨는 그래서 한인들에게 맞는 신문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운 스페인어 문법은 엉터리였다는 결론이라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불편해도 버릴 것은 버리는 게 세상 순리여야 한다고. 백씨는 "나도 학부(외대 스페인어과)에서 똑같이 배웠다. 하지만 라틴어의 특성을 무시한 동사 변화는 끔찍하다 못해 공포였다"며 "왜냐하면 영어 문법에 스페인어를 포함한 라틴어를 구겨넣는 바람에 외국인은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주위에서 라틴계가 아닌 영어권 학생들이 스페인어를 고교에서 한참 배우고도 몇마디 못하는 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한국어 배우기가 외국인에게 어려운 것도 한국어 문법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어느 나라 말이든 한가지 따져볼 것이 있다. 말과 문법 중 어떤 것이 먼저인가. 닭과 달걀과의 관계가 아니다. 항상 말이 먼저다. 말이 있고 그 다음에 문법이 있다. 그런데 영문법에 스페인어 문법을 짜맞추기에 원어민이 아니면 스페인어를 배우기 어렵게 된다. 영문법에 꾸겨 넣어진 스페인어 문법을 한인들은 그냥 배웠다. 그래서 남미에서 20년 넘게 스페인어를 몸으로 익힌 백씨의 신문법이 남다른 이유다. 어차피 말이 먼저이므로 문법에 구애 받지 않은, 특히 영문법의 '오류'로부터 벗어난, 한인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오리지널 스페인어 문법이 됐다. 백씨가 짚은 영어와 스페인어의 다른 점 몇가지는. 첫째, 라틴어는 영어가 워드 단위 언어인데 반해 글자 단위 언어다. 둘째, 1인칭인 '나'를 빼고는 모두 3인칭이다. 상황에 따라 동사변화가 되는데 라틴어에는 1인칭과 3인칭 동사변화만 있다. 셋째, 의문문은 모두 3인칭이고 긍정문은 모두 1인칭 동사변화를 쓴다. 그의 신문법의 핵심은 영어로 대표되는 게르만어들과 달리 동사변화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와 스페인어가 유사한 측면이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첫째, 한국어가 '~다'로 끝나듯이 스페인어도 동사원형이 '~AR'로 끝나고 둘째 동사원형 뒤에 인칭과 시제를 뜻하는 공통된 글자가 붙어서 문장을 구성한다. 셋째, 동사구조, 활용법, 존댓말 등이 비슷하다. 넷째, 발음과 철자가 쉽다. 다섯째, 조동사, 숙어, 관용어, 속어가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동사원형에 다른 말을 붙여 쓰죠. 예를 들어 '찾'다가 '찾'는, '찾'은, '찾'아 이런 식으로 변하는데 저희가 찾다를 알면 모두 응용을 할 수 있잖아요. 이걸 다 외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이걸 다 외우게 합니다." 결국 영문법식으로 접근하면 동사 하나를 과거, 현재, 미래, 진행형, 직설법, 가정법, 명령법, 완료형 등 20가지 정도로 활용한다고 믿는다. 덕분에 수업시간에 동사변화 외우다가 실패하게 쉽다. 하지만 한국어나 스페인어는 동사원형에 동사변화 규칙만 익히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8주면 기본 문법까지 다 배울 수 있게 된다. 백씨는 "스페인어는 특히 동사변화가 변칙이 없다"며 "영어권 1~3인칭, 과거형, 명령법 등으로 배우면 안된다. 평생 못배운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서 60시간만 제대로 500~600단어만 익히면 회화가 가능한 이유라고 한다. 그는 "현재 한국어로 나와있는 스페인어 교재가 영어권, 일본어책을 번역한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야 진정한 스페인어 교재가 세상에 나온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문의:(213)381-0041, martinpaik1210@gmail.com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dDhtmEK684 (마르띤 스페인어 신문법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n0HlN59jxok(마르띤 스페인어 신문법 2부) 장병희 기자 chang.byunghee@koreadaily.com

20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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